초대원장 장기려 박사님은 국내 간암절제수술 개척자이자 외과 수술 발전의 토대를 쌓으신 분입니다. 1959년 간암 환자 대량절제술에 성공하셨던 만큼 수술에 대한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분 밑에서 배운 선생님들이 계속 이 병원해서 일하며 많은 사례에 대한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복음병원 출신 외과의사라면 수술을 잘 할 거라는 신뢰가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딴 도로명이 지난 주 만들어졌다. ‘장기려로’
언젠가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네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하루 25시간을 일할 수는 없다. 일한다고 죽지도 않는다.’ 아무리 바빠도 그 순간이 언젠가는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힘들게 느껴지는 것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겠지요.
1982년에 고신대학교에 입학해서 의과 대학을 다니고 인턴까지 했다. 군 생활 3년을 빼면 내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전공으로 간담도췌장외과를 선택할 무렵은 위, 위장관, 대장항문 외과의 개념이 서서히 생겨나던 시기였다. 당시는 일반외과 내에서 다양한 환자를 다루고 있었고, 이제 막 각 파트의 구분이 이뤄져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복음병원에서 간이식 첫 케이스가 있었다. 나는 그때 아직 군인 신분이었지만, 운 좋게도 수술에 조수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간담도췌장 쪽에 남게 되었다.
아직까지 이식에 관한 부분은 지방이 수도권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방의 몇몇 대학이 충분히 서울만큼 해주고 있긴 하지만, 현 의료시스템 안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수술에 동원될 많은 인력, 무균실을 위한 공간, 병원 수익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다. 특히 사립 병원은 재정지원이 외부에서 이뤄지지 않기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식을 제외한 분야, 암 환자 치료는 평균화가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서울과도 큰 차이가 없다. 우리 병원의 경우 이식을 위한 준비와 세팅을 마치고, 환자가 나타나면 곧바로 수술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 병원의 수준이 낮을 거라는 편견이 남아 있어 일을 추진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료를 하다 보면 세상을 떠나는 환자를 자주 보게 된다. 누구라도 세상을 떠날 때가 오면 화도 나고 서러울 텐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이가 있다. 자기 불편을 호소하는 대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놓지 않는 것이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끝까지 인간성을 지키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환자를 보며 반문하곤 한다. 나도 정말 힘들 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7~8년 전 동향인 환자를 만났을 때가 그랬다. 간암 수술을 두 번, 척수에 전이가 돼 재수술까지 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지 2년 가까이 된 환자였다. 그분은 그런 상황에서도 대학생인 두 아이의 취업 걱정을 했다. 자식들 역시 부모에 대한 태도가 남달랐기에 힘든 순간이었음에도 참 행복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비록 3년이 못 되어 세상을 떠나셨지만 늘 자기 아픔보다는 자식 걱정이 앞선 분이었다.
처음 의사가 될 때는 의사가 되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보다 무슨 일에도 성실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행운인 것은 내가 있는 곳이 장기려 박사님께서 계셨던 곳이어서, 적어도 그분의 행동과 자세를 따라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환자를 대한다. 환자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자 노력하고 편하게 대해주려고 애쓴다. 아파서 병원에 온 사람들이니 역지사지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한다.
장기려 박사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건 나와 같은 의사뿐만이 아니다. 복음병원은 사립병원임에도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는 의료 보호 환자들의 비율이 높은데, 입원하는 데 제한도 없고 다가서기 쉬운 이미지를 지녔다. 병원 직원들도 입원 절차나 서류 작성에 불이익과 불편이 없도록 돕는다. 이 또한 분명 장 박사님의 정신이 스며들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근무하는 사람에게도 진료를 받는 환자에게도, 은연 중 무형으로 남아 있는 장 박사님의 뜨거운 마음이 가 닿은 것이 아닐까?
나는 의사다. 의사의 임무는 삶에서 암처럼 힘든 병을 만난 사람들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를 곁에서 돕는 것이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 실제로 치유되는 과정을 보면 참 뿌듯하다. ‘환자가 나 아닌 다른 의사에게 갔더라면 더 좋은 치료를 받지 않았을까?’라는 두려움이 늘 있지만, 이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나은 실력을 지닌 의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기계적으로 자기 지식만 고집하는 의사들이 많다. 서로 만나는 일이 별로 없고, 모자라는 지식에 대해 다른 이의 의견을 구하거나 자기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지 못한다. 나는 간암 수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간암의 세포 현미경 보는 방법은 잘 모른다. 만약 관련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떨까? 아마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미래의 좋은 의사는 실력뿐만 아니라 소통과 화합을 아는 의사여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그런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